2023년 2월 28일 화요일

다큐온 1973년 3월 3일생 다큐 On 188회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3월 3일


다큐온 1973년 3월 3일생 다큐 On 188회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3월 3일


KBS1 다큐 On 188회 2023년 3월 3일 방송 시간 출연진 프로필 촬영지 위치 어디 촬영장소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1973년 3월 3일생

대한민국의 중심에 선, 올해 만 50세의 1973년생

2023년, 대한민국 인구의 1.8%를 차지하며 올해 만 50세를 맞은 1973년생!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고속 경제성장의 가도에서 태어나 유신 교육의 유산을 물려받으며 성장했으며,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 직전 IMF경제 위기 속에서 역대 가장 치열한 취업 경쟁에 내몰렸던 세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와 맞닥뜨린 세대이자 높아진 평균수명으로 고령의 부모세대 부양 의무를 떠맡으며 스스로 초고령 사회의 진입을 준비해야 하는 1973년생.

1973년생 소띠들의 아주 특별한 동창회가 열렸습니다

1973년 3월 3일, 유신체제하 국영방송 KBS가 공영체제의 ‘한국방송공사’로 거듭난 날입니다.

지난 2023년 봄, KBS는 공사창립 50주년을 맞아 격동의 50년을 함께 겪으며 성장한 동갑내기 친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수소문한 끝에 KBS와 생일까지 똑같은 1973년 3월 3일생들과 아주 특별한 동창회를 열었습니다.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났지만, 73년생 소띠들에게 KBS는 동갑내기이면서 그들의 눈과 귀, 그리고 세상을 보는 창이었습니다. 한국방송공사 공채 1기(1973년 입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계진 전 아나운서가 1973년생 소띠들의 삶과 꿈 그리고, 그들이 늘 함께 했던 TV 뒤편의 KBS의 숨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녹록지 않았던 현실, 그러나 간절히 원한다면 꿈은 이뤄진다!

가난 탈출’이 국가적 목표였던 1970년대, 1973년생 소띠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은 TV였습니다.

방송이 시작되는 저녁시간 동네 만화방이나 TV가 있던 부잣집 친구집으로 달려가 나름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보던 만화 영화와 드라마. 73년생 소띠들에게 그 어린 시절의 TV속 KBS는 꿈과 동심이 자라는 무대였고 집밖의 세상을 보는 유일한 창(窓)이었습니다.

“개구리 왕눈이가 피리 부는 모습을 보면서 TV에서 피리를 불든, 나쁜 사람을 물리치는 배우가 됐든 그런 독특한 삶을 좀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 김재만(1973년 (음) 3월 3일생, 뮤지컬배우)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도 경제성장의 절정기, 198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컬러TV와 FM 라디오가 광범위하게 보급되었고, 국민들은 다양한 세상을 더 넓은 시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계속되는 독재정권의 집권으로 전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정부는 국민의 눈과 귀 역할을 담당하는 언론을 탄압하는 암울한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시민들은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는 현실 풍자 코미디에 열광했습니다.

“사람들이 억압되어 있던 것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데는 코미디 프로그램밖에 없는 거예요. 풍자하는 것이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어떤 세태라든가... 우리는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코미디를 했어요.“ -김학래(KBS 특채 개그맨)

암울했던 80~90년대 온갖 위기를 이겨낸 대한민국의 저력, 그 중심에는 1973년생들이 있었다!

컬러TV의 보급과 함께 방송의 영향력과 역할 또한 점점 더 커져갔던 1980년대. 최고 시청률 78%! 국민 10명 중 8명이 시청했을 정도로 장안의 화제였던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은 전쟁으로 흩어져 살던 가족 1만여 명이 수십 년 만에 재회할 수 있도록 오작교 역할을 해주었고,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대 스포츠 이벤트 86 서울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의 유치와 개최는 전 세계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러나 고속 성장의 반작용이었을까요? 곳곳에서 숨겨진 문제들이 불거졌습니다. TV 속보를 통해 전해진 각종 사건·사고들. 73년생들이 마주했던 대한민국은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모순된 곳이었습니다.

“(전공이 건축이었는데) 군대에 있을 때 성수대교 붕괴사건하고 삼풍백화점 사건을 뉴스로 봤어요. ‘복학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소임을 다해야겠다’라는 걸 느꼈어요.“ - 임종명(1973년 3월 3일생, 건축시공기술사)

곧이어 IMF 사태가 터졌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사회초년생 73년생들은 정든 회사를 뒤로하고 떠나는 선배들을 보며 불안한 미래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위기를 만나면 더욱 강해지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성덕 바우만을 살리기 위한 전국민적인 골수기증 운동, IMF 극복 금 모으기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을 때, 73년생들에게 대한민국은 자부심의 나라였습니다.

달리다 보니 대한민국의 중심세대, 더 큰 세상을 위해 도약!

힘들었던 1980~90년대를 버텨낸 73년생들에게 새로운 밀레니엄은 용기와 희망의 시기였습니다. 지금도 가슴 벅차오르는 ”대~한민국! 짝짝 짝짝 짝!“ 2002 한일월드컵 개최 성공과 역대급 대이변으로 불린 4강 신화까지 이뤄낸 대한민국~. TV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응원석이고 너나 할 것 없이 응원단장이었던 2002년. 한국은 IMF를 조기졸업하고 선진국으로의 도약에 한발짝 다가섰습니다. 이 시기 스포츠 문화에 버금가는 대중문화의 파워도 점차 커지더니 어느새 한류가 돼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K-wave 한류는 대한민국의 또다른 수출품이 되었습니다.

“(내부에서) ‘KBS가 주도적으로 한류를 이끌어야겠다’해서 한류 추진단을 만들었고, 어떤 식으로 한류를 체계적으로 보급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예능국은 뮤직뱅크를 중심으로 해외 공연을 많이 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KBS월드죠” -오세영(전 KBS 글로벌 센터장)

다시금 찾아 온 시련, 미래세대들을 위한 고민

그리고 또 한 번, 세상은 격렬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난극복일 일상이 되어버린 사회. 대한민국의 허리를 책임지던 73년생들에게 찾아온 또 다른 시련, 과연 73년생 소띠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요?

대한민국 50년, 격변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으며 함께 성장한 한국방송공사 KBS와 동갑내기 1973년생 소띠들. 반백 년을 돌아 인생의 반환점에 선 그들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으며, 또 어떤 내일을 꿈꾸고 있을까요?

3월 3일 금요일 밤 10시 50분, KBS 1TV 공영방송 50주년 기획 <다큐온> “1973년 3월 3일생” 에서 함께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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